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 줄거리 도서

1. 저자 소개

2. 대충 훑어보기

사냥을 마치고 지나는 길에 만취해 잠이 든 땜장이 크리스토퍼 슬라이를 발견한 영주는 그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칙사대접을 하여 영주로 착각하게 만든 다음 그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연극을 보여주는데, 그 연극이 바로 《말괄량이 길들이기》다. 패두어의 부호 뱁티스터에게는 캐서리나 비앙카라는 과년한 두 딸이 있어 이들을 나이순으로 결혼시키려 하는데 여의치가 않다. 얌전한 비앙카에게는 구혼자가 줄을 서는 반면 말괄량이로 소문난 캐서리나의 경우에는 어떤 남자도 접근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마침 결혼도 하고 돈도 벌 목적으로 패두어에 나타난 페트루치오가 말괄량이 캐서리나보다 한술 더 뜨는 말괄량이 작전을 펴서 전격적으로 결혼식을 올린 다음, 밥을 굶기고 잠을 재우지 않고 온갖 생트집을 잡는 등 말괄량이 캐서리나의 기를 꺾어 철저하게 순종하는 아내로 길들이고자 한다. 마침내 비앙카와 루첸티오의 결혼식 피로연에 참가한 페트루치오와 캐서리나 일행은 가장 순종하는 아내에게 돈을 거는 내기에서 멋드러지게 기적을 연출하여 연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데…

3. 더 재미있게 읽기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셰익스피어의 초기 습작기에 해당하는 1592년에서 1594년 사이에 씌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에 씌어진 본격적인 낭만희극들에 비해 예술성이 떨어진다고 해서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지만, 무대공연 시 낭만희극이나 4대 비극 못지않은 대중적인 인기를 누려온 작품이고 우리 무대에서도 심심찮게 공연되어왔기 때문에 우리 관객들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은 작품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흔히 이 작품의 원문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말괄량이 길들이기’라는 아주 특별한 주제를 다룬 극중극이 이 극의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흔히 사람들이 알고 있는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서극에 등장하는 술취한 땜장이 크리스토퍼 슬라이가 관람하게 되는 극중극에 해당하는데, 말하자면 액자 속의 그림처럼 극 속에 극이 들어 있는 (비록 완전한 구조는 아닐지라도) 아주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는 작품이 바로 《말괄량이 길들이기》인 것이다. 따라서 ‘말괄량이 길들이기’ 이야기를 다루는 극중극이 이 극의 본극이 되는 셈인데, 이런 극구조는 셰익스피어의 전체 극작품 가운데 유일하다.

 또한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말괄량이 길들이기’라는 다분히 남성지배의 전통을 강하게 드러내는 주제가 시사하는 바, 작품 전체가 지극히 반여성적인 성격을 띤 것으로 이해되기 쉬운 데다가 현재의 독자나 관객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구석이 적지 않다. 가령, 페트루치오가 캐서리나를 길들이기 위해 동원하는 온갖 가학적인 방법들, 즉, 야생매를 길들일 때 사용하는 방법 그대로 밥을 굶기고 잠을 재우지 않는 식의 방법이 과연 지금의 관객과 독자들에게 희극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일찍이 버나드 쇼는 이 극이 현대적 감수성으로 보면 너무도 역겨운 극이라고 평하면서 상호존중하는 모든 여성과 남성은 이 극의 공연을 보이콧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정도다. 그런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최근에는 이 극을 여성에 대한 남성의 편협한 태도를 풍자한 작품으로 긍정적으로 이해하려는 경향도 눈에 띈다. 그렇다면 과연 《말괄량이 길들이기》라는 희극은 남녀관계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 작품인가?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에, ‘말괄량이 길들이기’라는 주제가 셰익스피어의 극에 유일하게 나타나는, 순전히 문학상으로만 존재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실제로 ‘말괄량이 길들이기’라는 주제는 르네상스 시대 문학의 여러 장르에 걸쳐 아주 흔하게 나타났으며,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씌어진 이 시기는 엘리자베스조 말기로서 여러가지 정치적, 사회경제적 갈등이 누적된 상태였고 특히 남녀간의 위계질서의 혼란에 대해 상당히 민감한 반응이 나타난 시기였다.

 이런 시기에 말괄량이로 낙인찍힌 여성들은 ‘징벌의자’에 묶인 채 수레에 실려 온 동네를 돈 다음 더러운 강물에 머리끝까지 몇 번씩 빠졌다 건져지는 수치스런 처벌을 받거나, 고문도구나 다름없는 ‘재갈’ 혹은 ‘입마개’라고 불렀던 철제 마스크를 쓰고 온 동네를 끌려다니다가 형틀에 세워지는 고통스러운 처벌을 공공연하게 받았던 것이다. 말괄량이를 길들이는 일은 이를테면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 강화하는 중요한 상징적 장치로서 기능했다고 할 수 있으니,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읽어야 할 필요가 바로 여기에 있다.

왜 말괄량이를 길들이려 하는가

 그런데 도대체 말괄량이는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며, 말괄량이는 여성에게 그렇게 큰 결함인가? 흥미롭게도, 영국에서 ‘말괄량이’는 결혼의 불화를 일으키는 장본인으로 비난받는 상대를 낮추어 일컫는 말로 남편이나 아내 모두에게 해당될 수 있는 단어였으나, 중세 말을 거쳐 르네상스 시기에 오면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는 잔소리 심한 기혼여성을 가리키게 된다. 이때 주목할 점은, 말괄량이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꾸짖고 떠들어대는 언어적 행위로 나타난다는 것이며, 'shrew'가 ‘scold’와 혼용되었던 점을 보아도 그러하다. 남성의 언어가 합법적인 권위를 대변한다면 여성의 언어는 그것에 반항하는 시도로 간주된다. 결혼의 평화와 질서가 남편의 권위를 바탕으로 생성, 유지된다고 보는 한, 마땅히 남편은 언어로써 남편의 권위에 도전하는 말괄량이 아내를 말없이 순종하는 아내로 길들여야 할 것인데, 페트루치오가 이루고자 하는 바가 곧 이것이다.

 그런데 말괄량이로 낙인찍힌 캐서리나의 ‘결함’이라는 것이 따지고 보면 남달리 뛰어난 그녀의 언어적 재치 내지는 남성들의 부당한 간섭에 저항하는 그녀 나름의 개성이라고 평가할 만한 것이다. 그리고 말괄량이 캐서리나와는 대조적으로 결혼시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는 비앙카는 실상 아버지나 여러 구혼자들이 생각하는 대로 순종적이기만 한 여성이 결코 아니며, 5막의 내기 장면에서 드러난 말괄량이적인 비앙카의 모습은 그녀에게 없었던 새로운 면모가 아니라 오히려 남성들의 눈에 드러나지 않았던 진면목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말없이 얌전하다고 해서 이상적인 처녀로 간주되는 비앙카나 말이 많아서 흠많은 처녀로 간주되는 캐서리나는 다같이 여성을 이런 식으로 양분하여 한쪽은 이상화하고 다른 한쪽은 폄하하는 왜곡된 남성중심적 사고의 희생자다. 이런 왜곡된 이분법적 도식으로서는 여성의 참모습에 접근할 가능성이 희박할 수밖에 없다.

다시 생각해보는 결말

 마지막으로, 얼핏 보기에 페트루치오가 ‘길들이기’에 멋지게 성공해서 말괄량이 캐서리나를 누구보다도 순종하는 아내로 만드는 식의 희극적 결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5막에서의 캐서리나의 변화는 너무도 극적인 것이라서 그녀가 과장된 연기를 통해 순종하는 아내의 모습을 패러디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낳기에 충분하다. 우선 남편에 대한 아내의 의무를 가르치는 긴 설교는 무대를 압도하는 캐서리나의 당당한 연설형식과 서로 아귀가 맞지 않는다. 이 순간 그녀는 자신의 실제 생각과는 다르지만 남편이 주문한 내용을 듣기 좋은 말로 멋드러지게 읊어댈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지 않겠는가. 물질주의적이고 강압적인 가부장제 사회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유일한 대안으로서 캐서리나는 남편에게 길든 아내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신 ‘복종을 통한 지배’를 꿈꾸었을 수도 있다. 페트루치오가 말괄량이 그녀를 ‘한술 더 뜨기 말괄량이 길들이기 작전’으로 길들였다면, 이번에는 그녀 편에서 ‘한술 더 뜨기 순종작전’으로 남편을 길들이려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렇다면 캐서리나는 남편에게 길들어줌으로써 가부장제적 질서를 완전히 내면화하거나 혹은 가부장제적 질서의 참담한 희생자로 전락하기를 거부하고, 순종적인 아내의 역할을 통해 남편을 길들일 수도 있는 가능성을 찾아내는 지혜로운 여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극적 결말이 제시하는 희극적 타협이 현대의 관객과 독자들에게 가장 바람직한 형태의 이상적인 결혼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극에 제시된 가부장제적 세계 속에는 캐서리나가 취한 선택 외에 더 나은 대안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극중의 희극적 화해가 지닌 근본적인 불균형과 불평등에 안타까워하지 않을 수 없으며, 상호간의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진정으로 평등하고 호혜적인 관계로서 맺어지는 남편과 아내의 모습을 꿈꿀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덧글

  • 느림 2017/04/20 12:49 # 삭제 답글

    유용한 정보였습니다. 감사해요
댓글 입력 영역


구글 사이드

날마다 새로운 그림

통계 위젯 (화이트)

02
9
835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