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리는 것을 만드는 비밀 도서



2014년 1월 28일, 세계 최대 홈퍼니싱 기업인 이케아가 2013년 실적을 발표했다. 순이익만 33억 유로(약 45억 1,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3.1%나 증가했고, 285억 유로에 달하는 매출액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케아는 2020년까지 매출을 지금의 2배인 500억 유로(약 682억 달러)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며 그 미래 성장의 동력으로 신흥국 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표 주자로 인도에 1,050억 루피를 투자하고 25개 매장을 오픈할 예정이다. 중국에는 1998년 이케아 1호점을 상하이에서 오픈했으며 현재는 총 16곳의 매장이 운영 중이다. 일본에서는 2006년 4월, 1호점인 지바 현의 후나바시 점이 영업을 개시한 이래 2014년 현재 8개 매장이 운영되고 있다. 2014년 하반기에는 한국에도 1호점이 완성되었고 아시아 시장에서 이케아의 존재감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케아는 별다른 현지화 전략 없이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케아 매장에 가본 사람은 누구든 느낄 것이다. 이케아 매장은 일본의 다른 어떤 가구점과도 차원이 다른 규모를 자랑한다. 매장 한 곳 당 평균 면적이 약 4만 제곱미터로 도쿄 돔에 필적하는 크기다. 전체 매출액을 면적으로 단순 계산하면 매장당 매출액은 100억 엔 이상이다. 새로운 매장의 오픈이 주변 상권에 미치는 영향은 상상 그 이상이다.

 이케아의 출점 과정은 매장 건설을 위한 부지 매입부터 시작된다. 때문에 오픈 때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오픈하면 절대 폐점하지 않는 것이 이케아의 경영 방침이다. 여기서 자사 상품에 대한 자신감과 고객과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수많은 외국계 소매유통업이 일본 시장에 진출했지만 일본 소비자의 마음을 얻어 성공적으로 안착해서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 반면에 이케아재팬은 1호점 오픈 이후 6년 만에 매장을 6곳으로 확대하고, 10년간 10개 매장을 추가로 오픈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 계획이 지극히 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이케아는 일본 시장에서 착실히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해외 시장으로 진출한 기업들은 문화적 차이를 해결하기 위해 과감히 자국에서의 비즈니스 스타일을 버리고 현지화 전략에 도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케아는 진출하는 국가에 따라 비즈니스 전략을 바꾸는 일 없이 대부분 지역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 매년 성장일로를 걷고 있는 이케아는 이제 전 세계 홈퍼니싱 기업 중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 승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별다른 현지화 전략 없이도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이케아의 역량을 다각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이케아라는 기업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한편, 단순 명쾌하게 그 정체를 파악할 수 있도록 쓰였다. 1장에서는 ‘이케아의 영혼’으로까지 불리는 잉바르 캄프라드의 창업 이야기와 이케아의 해외진출 과정에 대해 살펴본다. 2장에서는 비용, 디자인, 기능 등 세계 시장의 판도를 바꾼 이케아만의 전략을 알아보고 3장에서는 이케아의 구심점이라 할 기업 비전과 가치를 설명한다. 4장에서는 이케아만의 독특한 인재 선발 및 양성 과정을 알아보고, 5장에서는 전 세계 13만 명의 직원이 하나처럼 움직이는 조직 운영의 비결을 탐구한다. 부록에는 일본인 코워커들과의 인터뷰를 실었다. 기업 문화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통해 이케아 내부를 간접 경험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잉바르 캄프라드, 그를 설명하는 말은 간단하다. ‘이케아 왕국의 제왕’이 그것이다. 이케아의 핵심 비전과 초창기 성공 과정은 온전히 캄프라드 개인의 역량에 의해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캄프라드는 1926년 스웨덴 남부의 가난한 지역인 스몰란드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모는 독일에서 온 이민자로, 그들 가족은 아군나리드 마을에서 멀지 않은 엘름타리드 농장에서 살았다. 이민자 출신으로 척박한 땅에 정착하여 생활고를 겪기도 한 터라 그의 할머니는 절약정신이 강했고, 또 온 가족의 정신적 지주로서 카리스마도 보통이 아니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캄프라드는 할머니의 절대적인 영향력 아래 어린 시절을 보낸다. 한편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은 기차역 부근에서 상점을 운영했는데, 꼬마 잉바르는 외할아버지의 상점에서 놀이 삼아 곧잘 심부름을 하곤 했다. 오늘날 구두쇠 갑부로 명성을 날리는 캄프라드의 절약정신은 친할머니에게서, 철저한 상인정신은 외할아버지에게서 배운 것이다.

 캄프라드는 5살 무렵부터 이웃 사람들에게 성냥을 팔았으며, 7살이 되자 자전거로 더 먼 곳까지 나가 집집이 찾아다니며 이른바 방문판매를 했다. 얼마 후에는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대량으로 싸게 사들인 성냥을 소량 포장해서 판매했는데 그 과정에서 ‘박리다매’라는 고전적 비즈니스 모델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캄프라드는 성냥에서 화초 씨앗, 연하장, 크리스마스트리 장식 등 판매 품목을 늘리고 연필과 볼펜 같은 문방구도 취급하기 시작했다.

 1943년, 17살이 되던 해 직업학교를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한 캄프라드는 아버지에게 상으로 받은 용돈과 자신이 그간 번 돈을 합쳐 회사를 설립하기 이른다. 등록번호 8271번, 이케아가 바로 그것이다. 회사명은 자신의 이니셜인 I와 K 그리고 자신이 자란 엘름타리드 농장의 E, 아군리나드 마을의 머리글자 A를 합쳐 만든 것이었다. 1947년까지 캄프라드는 아버지의 소개로 직장생활을 하기도 하고, 병역을 이행하는 등 겉보기에는 사업체와 무관해 보이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이면으로는 계속해서 이케아의 통신판매 사업을 키워나갔다. 심지어 군대에서도 통신판매를 계속했으며, 사업 품목 또한 꾸준하게 늘려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1948년, 엘름타리드 농장으로 돌아가 본격적으로 사업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사업이 번창함에 따라 그의 가족이 회계와 포장에 동원되었으나, 여전히 이케아는 1인 기업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주문량이 많아지며 점점 보내야 할 소포 또한 많아져 농장에 1제곱미터 크기의 초소형 창고를 지었는데, 이것이 최초의 이케아 창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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